국가론 - 정의의 이익
안녕하세요?
책을 읽는 중에 종종 나오는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옮겨놓은 책들(소크라테스의 변명이나 국가론)은 마치 제가 소크라트스와 대화하며 논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뭐 논리나 철학에 대해서 모르지만 뭔가 논리력이나 사고하는 과정에 발전이 있을 것 같아
책 내용 정리차원으로 글을 적어봅니다.
저는 국가론은 소크라테스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첫번째 장은 정의의이익으로 주로 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폴레마르코스와 정의가 무엇인가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폴레마르코스는 정의는 친구에게 이익을 주고 적에게 해악을 주는 것이라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자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친구가 좋은 친구도 있고 나쁜 친구도 있을 수 있으며, 한 마리 말도 상처를 입으면 온순하다가 사나워지는 것처럼 미덕이 손상되면 부정한 사람이 될 수 있기에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또한 의로운 사람은 자신의 정의로 사람을 의롭지 않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친구에게 이익을 주고 적에게 해악을 주는 것은 정의로운 자가 하는 행동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트라시마코스와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세상이 실제로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 책을 읽으며 뭔지 모르게 트라시마코스와 한편이 되어 소크라테스의 반박을 듣게 됩니다.)
또한 해당 국가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법률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제정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의이고 이는 곧 강자의 이익을 말합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법률은 지배자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법만이 아니고 통치자들이 법을 올바르게 만들지 못하면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일을 국민들에게 지시하고 국민들이 그것을 따르는 것은 정의가 되니, 트라시마코스의 강자의 이익이 정의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냐고 합니다.
그게 트라시마코스는 전문가들은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전문가들도 실수를 할 수 있고 또 본인들을 위해서 한다고 한 일의 결과가 예상과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다시 법을 고치죠. 이렇게 반박해보고 싶네요)
그에 소크라테스는 강자라는 것이 그냥 일반적인 통치자를 말하는 것이요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를 말하는 것이오 라고 묻습니다. 트라시마코스는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라고 합니다.
그에 소크라테스는 의사와 선장을 예로 들면서 의술과 통솔력이 의사 자신의 이익이나 선장 자신의 이익이 아닌 환자의 이익과 선원의 이익을 염두에 두면서 지시하는 것으로 통치자도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고 국민의 이익을 염두에 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후 트라시마코스의 반박이 저의 반박과 비슷하고 뭔가 울화통터지던 것을 대변해줘서 속이 좀 시원해집니다.)
트라시마코스는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라 이야기하며 불의는 정의보다 훨씬 강한 힘과 자유,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불의가 정의보다 더 이익이라는 견해는 납득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트라시마코스가 양치기가 양을 위해 양을 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했던 이야기에 소크라테스는 의사든 양치기든 선장이든 보수를 받아 이득을 얻지만, 그 모든 기술은 기술이 적용되는 대상에게 이익을 줌으로서 보수라는 이익을 전문가에게 부과하는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글라우콘의 이야기가 잠깐 나오고 다시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에게 불의가 어찌 정의보다 더 이익이 되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숭고한 단순함으로 불의는 재기 넘치는 판단으로 부르며, 불의한 사람을 영리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소크라테스가 다시 기술의 예를 들며,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자 중에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더 지혜롭다며 트라시마코스의 동의를 얻고, 지혜로운 음악가가 음을 조율할 때 자신의 분수를 넘어 다른 음악가처럼 되고자 노력하지 않고 조예가 없는 자가 그리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동의도 얻는다. 무지한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나 이겨보려고 덤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문지식이 있는 자는 지혜롭고 현명하기도 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정의는 덕이며 지혜지만 그렇지 못함은 악이며 무지임에 합의합니다.(어쩌다가 합의가 되었는지 잘 수긍이 되지 않습니다. 더 생각해봐야하는데......머리가 생각을 안하네요)
마지막으로 소크라테는 불의는 분열과 증오를 부르고 정의는 우애와 협조를 부르므로 일을 도모하는 무리가 불의하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며, 정의한 자는 부정한 자보다 모든면에서 뛰어나다고 합니다. 지혜와 덕, 그리고 어떤일을 도모하는 것에서 말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악인들은 어떤 일도 할 수 없으니, 불의한 자들이 힘있게 행동을 관철한다는 주장이 맞지 않다고 합니다.(소크라테스 할아버지, 사람이 딱 악인이랑 정의로운 사람만 있나요? 지혜를 가지고 있으나 악인적인 측면을 가지고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게 일을 처리할 수도 있잖아요. 대놓고가 아니고 교묘하게 말입니다)
이번에는 정의로운 자의 삶이 행복한가 여부를 따져보자고 합니다.
우리의 귀와 눈은 듣고 보는 것의 고유의 기능을 하고, 정신도 고민하고 지배하겠다 마음 먹는 생각 등 고유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정신 기능에 의지하는 것이고 만약 정신기능이 훌륭하지 못한 악덕에 의해 고유의 기능을 상실한다면 악덕한 정신을 가진 인물은 잘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나서도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글을 제대로 못 읽었을수도.....)
하지만 이렇게 속으로 논박을 하며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고
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