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자

아이의 학교 앞에 깡패 모습을 한 분이(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모습 그대로) 며칠째 나타난다면, 아이에게 주의를 줘야할까요?

검정머리앤셜리 2024. 6. 19. 19:26

1. 나흘째, 영화 속에서 깡패역할을 하시다가 방금 나오신 것 같은 모습을 한 남자분이 아이의 학교 교문 쪽에 서 계십니다.

아저씨는 보통 보호자와는 다르게 교문에서 조금 떨어져서(교문으로부터 가로수 5개정도의 떨어진 곳) 나무 뒤에 꼭 서 계십니다. 보통의 보호자들은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의 보호자이겠죠?) 아이들이 보호자를 확인할 수 있게끔, 교문근처나 눈에 띄는 곳에 있기 마련인데, 그 분은 나무 뒤쪽 그 근처에 가야지 그 분이 계신 걸 알 수 있는 자리에 계십니다. 

모습은 정말로 깡패역할로 영화 촬영을 하시다가, 방금 나오신 것 같은 모습입니다. 올빽머리에 단추를 한 세개정도 푼 셔츠, 배 위로 바지를 올리고 허리띠를 하시고, 그 특유의 비스듬한 자세를 하고 계시지요.

 

처음 아이를 데리러 가다가 나무 뒤의 남자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은 무슨 호랑이무늬같은 쫄티를 입고 계셨고, 그 길은 학교로 가는 길 중에서 큰 도로와 연결된 곳이라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자주 다니는 길은 아니라, 누군가가 있을꺼라고 생각을 못하고 가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까지 그 분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저 분, 영화 속에 나오는 깡패역할을 하는 분들과 정말 비슷한 모습이야. 라고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혼자 등하교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기간이고, 아이가 곧 혼자 다녀야 할 일들이 생길 것 같다고 예상하고 있는 중이라, 저 혼자 늘 뭔가 진지하고 심각한 상태이긴 합니다(아직도 도로에서 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보지도 않고 노룩패스하고, 앞에 자전거가 달려오는 데 옆에 다른 것에 눈이 팔려 옆만 보고 걷는 아이를 보면 혹시나 혼자 있을때....아마 혼자있을 때도 분명히 그러하겠죠 이러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아이에게 나의 편견을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일은 옳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바심에 저 분은은 그냥 아이가 학교마치는 걸 기다리는 보호자일 수도 있는데, 아닐 수도 있어. 어쩌고저쩌고, 실제로 겪어보지도 않은 영화 속 무서운 장면을 아이한테 이야기하고 맙니다.

 

2. 위험을 미리 알리는 부모,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게 하는 부모

저의 편견일 수도 있고, 혹시 먼저 세상을 살아본 사람의 정확한 감일 수도 있고, 저도 사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인데 저는 은연중에 아이에게 이런류의 주의를 많이 주고 있었습니다.

 

하루 한마디 인문학 질문의 기적(김종원 지음)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유치원아이가 중년의 학원승합차운전기사가 늦자, "늙으니 분별력이 없네!"라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엄마가 집안 어른들과 전화하며 끊으면서 무의식적으로 하던 말이지요. 어른들은 너무나 쉽게 아이 앞에서 감정과 의사를 표현합니다. 그것도 저런 말을 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의 편견이 가득한 말을요.

책에서 나온 예시의 말 중에 "꼭 기억해, 저 사람은 나쁜사람이야"라는 말도 있습니다.

제가 한 말과 일치합니다. 그리고는 부모가 너도 그렇게 해야해하며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할 때 문제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제가 그 남자분이 깡패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저런 모습을 한 사람을 피해야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나쁜 사람이고, 너가 혼자 집으로 가는 길에 그런 사람이 다가오면 아니 다가오기도 전에 피해야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니까요.

 

이런 행동은 갓 태어난 작은 가능성이라는 아이를 오로지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노예로 여기는 것과 같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면 부모에게 주입받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에 빠져 방황하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자존감과 희망을 잃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소극적으로 변하고 도전하기보다는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 된답니다. 

 

저의 과거를 생각해보니, 엄마께서는 걱정이 많은 분이셨는데, 늘 선제적으로 어떤 위험이 일어날지 알려주고 주의를 주고 또 조심 또 조심 시키셨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건강히 자란 것일 수 있지만, 제 마음 속에는 어떤 일을 할 때, 도전하기보다는 조심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시작도 못하고, 내가 왜 시작을 못하나 생각해봐도 긍적적인 결론보다는 부정적인 결론을 생각하며 안 할 궁리만 하는 저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어쩌면 스스로의 결정과 결과를 받아드리는 일보다, 어려운 일을 겪길 바라지 않는 부모님의 마음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삶이 우리 아이가 더 원하는 삶일까요? 

예전에 제 친구 두 명이 심야영화를 보고 12시가 넘어서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20년전의 일이지요. 대중교통은 이미 끊어졌고, 두 친구는 영화관에서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두 친구의 집은 서로 근처였어요.

근데 한 친구의 어머니는 10분간격으로 전화를 하십니다. 어디니? 어디쯤왔니? 반면, 다른 친구의 전화기는 조용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집근처에 다왔는데 조용하던 다른 친구의 전화기에서 벨이 울립니다. 친구의 어머니입니다. 친구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집 앞에 가게 문열어있으면 간장 좀 사와~뚜뚜뚜. 

그 두 친구로 무슨 통계나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지금 20년이 흘러 두 친구를 보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보입니다. 엄마께서 계속 전화를 했던 친구는 안정된 직장을 가졌지만, 뭔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기보다 주어진대로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그럭저럭 사는 모습입니다. 반면, 다른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주변에서는 안된다고 하는 일들도 끝끝내 해내고, 주변의 시선이나 기대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입니다. 두 친구 중 누구의 삶이 더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좋은 삶이라는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묵묵히 가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저는 한번도 제 의지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그리고 묵묵히 가본 적도 없거든요.

 

3.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말하지 말아야 하나?

세상과 사람을 이유없이 미워하는 감정은 부모가 굳이 아이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가 살아가면서 저절로 경험하게 되는 불필요한 감정이다 - 하루 한마디 인문학 질문의 기적(김종원 지음) .

아이에게 편견을 가지게 하는 말은 삼가야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알고 있는 위험(어쩌면 편견)을 아이에게 미리 알려줘서 아이는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주저 앉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험의 종류도 다양할 것이고요.

일단 작은 위험일때는 아이가 직접 경험해보고 책임져보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아이가 엄마가 다 결정해줬잖아. 엄마때문이야 이렇게 이야기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말 위험해 보이는 것(뭐 이것도 저의 편견일 수 있습니다)은, 아이에게 힌트를 주겠습니다. 하지만 정답이라 이야기하지 않고 힌트에 그치도록 조절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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